전통 한복 입문서

조선시대 한복 변천사: 시대별 실루엣이 달라진 이유

전통한복기록 2026. 1. 7. 21:35

조선시대 한복의 실루엣은 “예쁘게 보이기”만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사회 규범(유교적 예법), 생활환경, 직물·염색 기술, 전쟁과 경제, 계층 문화와 유행이 겹치면서 단계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같은 ‘저고리·치마·바지’라도 시대가 달라지면 길이, 허리선, 폭, 겹침 방식이 달라지고 그 결과 전체 비율(실루엣)이 바뀝니다.

실루엣이 바뀐다는 뜻: 길이·허리선·부피·겹침의 변화

조선 한복의 실루엣 변화를 읽을 때 핵심은 네 가지입니다.

  • 저고리 길이: 상체 비율을 결정합니다(길면 단정·절제, 짧으면 경쾌·강조).
  • 치마/바지의 허리선 위치: 허리선이 올라갈수록 다리가 길어 보이고 상체가 짧아 보입니다.
  • 폭(부피감): 치마의 풍성함, 바지의 통, 소매의 너비는 ‘격식’과 ‘움직임’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 겹침(속옷·겉옷의 층): 속치마·속곳 같은 속의(속옷) 층이 늘면 실루엣이 커지고, 겉옷이 추가되면 단정함과 위엄이 강화됩니다.

이 네 가지가 시대별로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보면, “왜 그 시대에 그런 형태가 자연스러웠는지”가 설명됩니다.

조선 전기 실루엣: 길고 낮은 비율, 절제된 부피

조선 전기(대체로 15~16세기)의 복식은 전체적으로 길이가 길고, 허리선이 과도하게 올라가지 않으며, 부피감이 절제된 형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성복은 저고리가 비교적 길어 상체를 넉넉하게 덮고, 치마 역시 과장된 풍성함보다는 **자연스러운 낙폭(떨어지는 폭)**이 강조되는 편이었습니다. 남성복 역시 포(겉옷)류의 길이감과 여유 있는 품이 ‘단정한 격식’을 만들었습니다.

이 시기의 형태가 성립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초기 국가 질서와 예제(禮制)의 정비: 복식이 ‘유행’보다 ‘규범’에 가까웠고, 단정함과 절제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 생활 기반과 소재의 제약: 직물 생산과 염색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과도한 장식보다 구성과 마감의 안정성이 중요했습니다.
  • 실용 중심의 착용 환경: 한복은 기본적으로 활동을 전제로 한 구조이기 때문에, 과한 부피감은 오히려 불편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전기 한복의 절제된 폭은 이런 생활감과 맞닿아 있습니다.

정리하면 조선 전기는 “상체와 하체가 과도하게 분리되지 않고, 전체가 길게 이어지는 단정한 실루엣”이 기본값이었습니다.

조선 중기 실루엣: 전환기, 길이의 단축과 허리선 상승이 시작됨

조선 중기(대체로 17세기 전후)는 실루엣 변화의 전환점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이 시기에는 여성 저고리가 점차 짧아지는 방향으로 흐르고, 치마의 착용 위치가 조금씩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즉, 상체는 짧아지고 하체는 상대적으로 길어 보이는 비율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남성복 역시 전란 이후 생활 조건과 사회 분위기 변화 속에서 착용 방식과 겉옷의 활용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전환이 발생한 배경은 비교적 현실적입니다.

  • 전쟁 이후의 사회 변화: 큰 전란을 거치면 생활 방식이 바뀌고, 옷은 ‘이상적인 규범’뿐 아니라 ‘현실의 필요’에 더 민감해집니다. 수선·재봉·재활용이 늘어나면 옷의 길이와 구성도 영향을 받습니다.
  • 직물 보급과 제작 환경의 변화: 면직물(무명) 보급 확대 같은 소재 환경 변화는 일상복의 제작과 수선을 쉬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착용의 다양화를 촉진합니다.
  • 유행의 가시화: 사회가 안정되면 ‘보편적인 규범’만이 아니라 ‘취향과 유행’이 옷에 반영됩니다. 저고리 길이 변화는 이런 흐름과 연결됩니다.

중기는 “전기형 단정한 길이감”에서 “후기형 비율 강조”로 넘어가는 과도기였고, 이때부터 실루엣 변화가 점점 선명해집니다.

조선시대 한복 변천사: 시대별 실루엣이 달라진 이유

조선 후기 실루엣: 짧은 저고리·높은 치마, 풍성한 속의로 만든 ‘부피의 미학’

조선 후기(대체로 18~19세기)로 가면 변화가 확실해집니다. 여성복은 저고리가 더 짧아져 상체가 간결하게 보이고, 치마는 상대적으로 더 강조됩니다. 특히 치마는 착용 위치가 높아지며, 속치마·속곳 등 속의(속옷)의 층을 활용해 **부피감(풍성함)**을 만들면서 특유의 실루엣을 형성합니다. 즉, 단순히 치마 한 장이 아니라 “속의 층 + 겉치마”로 형태를 잡는 구조가 강화됩니다.

남성복은 기본적으로 바지저고리 위에 겉옷(두루마기 등)을 갖추는 형태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 격식과 실용의 균형이 정리됩니다. 또한 19세기 말로 갈수록 외부 문화 접촉과 생활 양식 변화 속에서 겉옷의 선택 폭이 넓어지고, 마고자 같은 아이템이 퍼지는 배경이 마련됩니다.

후기 실루엣이 성립한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 유교적 단정함의 방식 변화: 몸의 라인을 직접 드러내기보다, 속의와 겉치마로 형태를 잡아 ‘단정한 볼륨’을 만드는 방식이 선택되기도 합니다. 풍성함은 단순 장식이 아니라, 당시의 단정함·격식 감각과도 연결됩니다.
  • 계층 문화와 과시/절제의 균형: 옷은 신분과 경제력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같은 한복이라도 소재·색·마감·문양·층의 구성으로 차이가 나고, 이런 차이가 유행을 만들기도 합니다.
  • 기술·공급의 확대: 직물과 염색, 재봉 기술이 안정되면 ‘가능한 옷’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가능한 범위가 넓어질수록 실루엣은 더 다양해지고, 특정 스타일이 유행을 통해 표준처럼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 생활환경과 실용의 재조정: 18세기의 극단적 유행은 시간이 지나며 완화되거나 안정화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한복은 결국 입고 생활해야 하는 옷이기 때문에, 실용성과 미감 사이에서 균형점이 다시 잡힙니다.

후기는 한마디로 “비율과 볼륨을 적극적으로 설계하는 시대”였습니다. 저고리·치마·속의의 조합이 실루엣을 ‘만드는’ 방식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한복 실루엣이 달라진 이유를 정리하면,

(1) 예법과 단정함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달라졌고,

(2) 전쟁과 경제가 생활방식을 바꾸었으며,

(3) 소재·염색·재봉 환경이 확장되면서 가능한 형태가 늘었고,

(4) 계층 문화와 유행이 결합해 특정 비율이 ‘아름다움의 표준’처럼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전통한복이라도 시대별로 비율과 층을 다르게 설계했다는 점을 이해하면, 한복을 볼 때 “예쁘다/올드하다”를 넘어 “왜 저 형태가 그 시대에 자연스러웠는지”를 구조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